퀀텀

퀀텀점프-한 걸음씩 걷는 방식과 전체를 동시에 보는 방식

친절샘 정이 2026. 5. 2. 21:08

5부 | 미로를 걷지 말고 하늘에서 내려다봐라

한 걸음씩 걷는 방식과 전체를 동시에 보는 방식


처음 서울에 온 사람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이 있다.

서울에 처음 왔다. 지하철 노선도를 받아들었다. 목적지가 있다. 강남역이다. 지금 있는 곳은 신도림역이다.

지도를 본다. 2호선을 타면 된다. 간단해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 달랐다. 환승역에서 어느 방향인지 헷갈렸다. 내선순환인지 외선순환인지 몰랐다. 한 번 잘못 탔다. 다시 내렸다. 반대 방향으로 탔다. 두 정거장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겨우 강남역에 도착했다.

시간이 걸렸다.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런데 결국 도착했다.

이것이 클래식 컴퓨터가 문제를 푸는 방식이다. 한 번에 한 경로씩. 틀리면 돌아와서 다시. 결국 답을 찾지만, 시간이 걸린다.


서울 교통 관제 센터

같은 시각, 서울 교통 관제 센터가 있다.

천장에 거대한 모니터가 붙어있다. 서울 전체 지하철 노선이 한눈에 보인다. 지금 이 순간 모든 열차의 위치가 점으로 표시된다. 어느 구간이 막히는지, 어느 역이 혼잡한지, 어느 노선이 지연되는지 전부 보인다.

관제 센터 직원이 신도림역에서 강남역까지 가장 빠른 경로를 찾아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

화면을 보는 순간 안다. 2호선이 지금 혼잡하다. 1호선을 타고 가다가 환승하는 것이 더 빠르겠다. 아니면 버스가 더 나을 수도 있다. 서울 전체를 동시에 내려다보기 때문에 최적의 경로가 보인다.

한 걸음씩 걸어보지 않아도 된다. 전체를 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퀀텀 컴퓨터가 문제를 푸는 방식이다.


두 종류의 소방관

불이 났다.

건물 안에 사람이 갇혀있다. 빠르게 찾아야 한다. 건물이 크고 복잡하다. 방이 수백 개다.

첫 번째 소방관. 혼자 들어간다. 1층 첫 번째 방 문을 연다. 없다. 두 번째 방 문을 연다. 없다. 층층이 올라가며 하나씩 확인한다. 시간이 갈수록 연기가 짙어진다. 열 번째 방에서 사람을 찾았다. 다행이었지만, 시간이 너무 걸렸다.

두 번째 소방관 팀. 건물 모든 층에 동시에 들어간다. 각 층마다 한 명씩 배치된다. 동시에 모든 방을 확인한다. 3층 여섯 번째 방에서 발견했다는 무전이 들어오는 순간, 나머지 팀원 전원이 그쪽으로 이동한다.

같은 건물을, 같은 소방관이지만 방식이 달랐다. 혼자 한 방씩 걷는 것과, 전체를 동시에 보는 것.

결과는 비교할 수 없다.


미로 이야기

이제 직접 미로로 들어가보자.

미로가 하나 있다. 입구가 하나, 출구가 하나. 갈림길이 스무 개다. 매 갈림길마다 왼쪽이나 오른쪽을 선택해야 한다. 경우의 수가 백만 가지가 넘는다.

클래식 방식으로 미로를 탈출한다.

입구에 선다. 왼쪽으로 간다. 세 번째 갈림길에서 막혔다. 돌아온다. 다시 입구. 이번엔 오른쪽으로 간다. 다섯 번째 갈림길에서 막혔다. 돌아온다. 다시 입구.

이것을 반복한다. 백만 번 이상 반복해야 할 수도 있다. 미로가 복잡할수록, 갈림길이 많을수록 더 오래 걸린다. 열심히 한다.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출구를 찾는다. 그러나 시간이 걸린다.

이것이 클래식 컴퓨터다. 틀리면 돌아와서 다시. 하나씩, 순서대로.


수천 명을 동시에 풀어놓으면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미로를 탐색한다.

수천 명을 동시에 입구로 들여보낸다. 각자 다른 경로를 탄다. 갈림길마다 각자 선택을 한다. 어떤 사람은 왼쪽, 어떤 사람은 오른쪽.

막힌 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멈춘다. 사라진다. 열린 길로 간 사람들은 계속 나아간다. 또 갈림길을 만난다. 또 선택한다. 또 일부는 막히고 일부는 계속 간다.

이것이 반복된다.

점점 사람 수가 줄어든다. 막힌 경로로 간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아남은 사람들은 점점 출구에 가까워진 사람들이다. 틀린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걸러진 것이다.

마지막에 출구까지 도달한 사람이 나온다. 그 사람이 걸어온 경로가 답이다.

클래식이 혼자 백만 번을 시도해야 했던 것을, 이 방식은 단 한 번의 흐름으로 찾아낸다.


체로 모래를 거르는 것

금을 찾는 광부가 있다.

강바닥의 모래에 금이 섞여있다. 어디에 금이 있는지 모른다. 모래알 하나씩 들여다볼 수는 없다. 너무 많다.

광부는 체를 사용한다. 강물을 퍼서 체에 붓는다. 체를 흔든다. 모래는 체 구멍을 빠져나간다. 금은 체 위에 남는다. 한 번의 동작으로 수천 개의 모래알을 동시에 걸러낸다.

금이 어디 있는지 하나씩 확인하지 않는다. 체라는 도구가 한 번에 걸러낸다.

퀀텀 컴퓨터가 이 체다. 틀린 경로들을 동시에 걸러내고, 맞는 경로만 남긴다. 하나씩 확인하지 않는다. 한 번의 흐름으로 걸러낸다.

그 걸러내는 원리가 간섭이다. 틀린 경로의 가능성들이 서로 부딪혀 상쇄되고, 맞는 경로의 가능성이 강해진다. 체의 구멍이 바로 이 간섭이다.


물이 가장 빠른 길을 찾는 방법

빗물이 지붕 위에 떨어진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여러 갈래로 동시에 흐른다. 어떤 물은 왼쪽 처마로, 어떤 물은 오른쪽 처마로, 어떤 물은 가운데로. 동시에 모든 방향을 시도한다.

막힌 곳에서는 멈춘다. 흘러갈 수 있는 곳으로만 계속 간다. 결국 가장 낮은 곳, 가장 빠른 경로에 물이 모인다.

물이 이 경로를 찾기 위해 한 번씩 시도하며 계산하지 않는다. 물리학이 자연스럽게 최적의 경로를 만들어낸다. 동시에 모든 방향을 흘러보고, 막힌 곳은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열린 곳에 물이 모인다.

퀀텀 컴퓨터가 문제를 푸는 방식이 이 빗물과 같다. 수천 가지 가능성이 동시에 흐르고, 틀린 경로는 자연스럽게 약해지고, 맞는 경로에 가능성이 모인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눈

두 사람이 산에서 길을 잃었다.

첫 번째 사람. 무작정 걷는다. 이 길인가 싶어서 가본다. 아닌 것 같다. 돌아온다. 저 길인가 싶어서 가본다. 한참 가다가 막혔다. 돌아온다. 산 전체를 두 발로 돌아다니며 하나씩 확인한다. 결국 마을을 찾지만 날이 저물었다.

두 번째 사람. 높은 바위에 올라간다. 산 전체를 내려다본다. 저쪽에 연기가 보인다. 마을이 있다는 뜻이다. 저기로 가면 된다. 내려와서 그 방향으로 곧장 걷는다. 한 번도 헤매지 않고 마을에 도착한다.

첫 번째 사람이 클래식 컴퓨터다. 열심히 걷는다. 틀리면 돌아온다. 결국 찾는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

두 번째 사람이 퀀텀 컴퓨터다. 높은 곳에서 전체를 본다. 한 번에 답을 찾는다.

그리고 퀀텀이 올라가는 그 바위의 이름이 중첩과 얽힘이다.


음악 오디션의 두 방식

오디션이 열렸다.

지원자가 만 명이다. 최고의 가수를 찾아야 한다.

첫 번째 방식. 한 명씩 무대에 올린다. 노래를 듣는다. 평가한다. 다음 사람을 부른다. 만 명을 다 듣고 나면 최고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만 명을 한 명씩 들으려면 몇 달이 걸린다.

두 번째 방식. 만 명을 동시에 같은 공간에 넣는다. 동시에 노래를 시작한다. 음정이 맞지 않는 목소리는 다른 목소리와 충돌하며 상쇄된다. 음정이 맞는 목소리는 서로 강화되며 울린다. 잡음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소리만 남는다. 몇 분 안에 최고의 목소리가 저절로 드러난다.

한 명씩 듣는 것이 클래식이다. 동시에 울리게 해서 좋은 소리만 남기는 것이 퀀텀이다.

그 좋은 소리를 남기는 원리가 간섭이다. 틀린 것은 상쇄되고, 맞는 것은 강화된다.


낚시와 그물

물고기를 잡는다.

낚싯대 하나로 잡는다. 한 번에 한 마리씩 공략한다. 물고기가 있을 것 같은 곳에 미끼를 드리운다. 기다린다. 안 오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느리지만 확실하다.

이번엔 그물로 잡는다. 넓은 그물을 던진다. 한 번에 호수 전체를 커버한다. 그물이 올라오면 물고기만 남고 물은 빠진다. 빠르고 효율적이다.

낚싯대가 클래식이다. 한 번에 한 곳이다.

그물이 퀀텀이다. 한 번에 전체를 커버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그물의 그물코 크기가 핵심이다. 원하는 크기의 물고기만 걸리도록 그물코를 맞춰야 한다. 너무 성글면 물고기가 빠져나가고, 너무 촘촘하면 모든 것이 걸린다.

퀀텀 회로를 설계하는 것이 이 그물코를 맞추는 것이다. 원하는 답만 걸리도록, 원하지 않는 답은 빠져나가도록. 그 정교한 설계가 퀀텀 알고리즘이다.


두 탐정의 방식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용의자가 백 명이다. 그 중 범인이 한 명 숨어있다.

첫 번째 탐정. 한 명씩 심문한다. 알리바이를 확인한다. 아니다 싶으면 다음 사람. 하나씩 걸러낸다. 백 번째에 범인을 찾을 수도 있다. 오래 걸린다.

두 번째 탐정. 백 명을 한 방에 모은다. 사건 현장 사진을 보여준다. 범인만 아는 세부 사항을 언급한다. 방 안을 관찰한다. 범인은 반응을 숨기지 못한다. 미세한 표정, 약간의 긴장, 눈동자의 움직임. 백 명을 동시에 관찰하기 때문에 범인이 드러난다.

한 명씩 심문하면 범인이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다. 동시에 관찰하면 숨을 곳이 없다.

클래식이 첫 번째 탐정이다. 퀀텀이 두 번째 탐정이다.

그리고 방 안에서 범인이 드러나게 만드는 그 메커니즘, 반응이 강해지고 숨기려는 시도가 약해지는 그 과정이 간섭이다.


결국 이 이야기가 말하는 것

미로를 걷지 말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라.

이것이 클래식과 퀀텀의 차이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한 말이다.

클래식은 미로 안에 있다. 벽이 보인다. 막히면 돌아온다. 열심히 걷는다. 결국 출구를 찾는다. 훌륭하다. 하지만 미로가 복잡할수록, 갈림길이 많을수록, 경우의 수가 커질수록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퀀텀은 하늘에 있다. 미로 전체가 보인다. 어디가 막혔는지, 어느 경로가 출구로 이어지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수천 명을 동시에 풀어놓고, 막힌 곳에서는 사라지게 하고, 열린 곳에서는 강해지게 한다. 살아남은 경로가 답이다.

같은 미로를 푸는 것이지만, 있는 위치가 다르다. 미로 안에 있는 것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의 차이다.

그리고 그 하늘로 올라가게 해주는 것이 중첩과 얽힘이고, 하늘에서 맞는 경로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간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