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의 문제가 아니라 컴퓨팅 방식 자체의 문제다
자전거 선수 이야기
세계 최고의 자전거 선수가 있다.
훈련을 수십 년 했다. 폐활량은 일반인의 두 배다. 다리 근육은 철판 같다. 자전거도 최고급이다. 티타늄 프레임에 공기저항을 최소화한 설계, 무게는 깃털처럼 가볍다. 이 선수가 이 자전거를 타면 시속 60킬로미터까지 낼 수 있다.
그런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세 시간 안에 가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졌다.
불가능하다.
선수를 더 훈련시키면 될까. 자전거를 더 가볍게 만들면 될까. 아니다. 자전거로 세 시간 안에 서울 부산을 가는 것은 인간의 한계가 아니라 자전거라는 이동 수단 자체의 한계다. 선수가 문제가 아니고, 자전거가 나빠서도 아니다.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 자체가 이 미션에 맞지 않는다.
기차를 타야 한다. 자전거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 수단 자체를 바꿔야 한다.
지금 AI가 맞닥뜨린 한계가 정확히 이것이다.
더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안 되면 더 열심히 하면 된다. 더 좋은 방법을 찾으면 된다. 더 많이 투자하면 된다.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런데 세상에는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구조 자체가 그 문제에 맞지 않을 때.
양동이로 욕조에 물을 채우는 사람이 있다. 처음엔 느리다. 더 빠르게 뛰면 좀 빨라진다. 양동이를 두 개 들면 더 빨라진다. 열 명이 달려들면 훨씬 빨라진다. 그런데 수영장 하나를 채워야 한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양동이를 들고 뛰어도 한계가 있다. 호스가 필요하다. 양동이를 더 크게 만들거나 사람을 더 많이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옮기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바둑판의 교훈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다. "AI가 이제 뭐든 다 할 수 있겠구나." 알파고가 바둑을 이긴 방식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양의 바둑 기보를 학습하고, 수백만 번의 자가 대국을 통해 스스로 강해졌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승리였다.
그런데 알파고가 바둑을 이기는 데 쓴 전기가 얼마인지 아는가. 이세돌이 바둑 한 판을 두는 데 쓰는 에너지의 수만 배다. 인간의 뇌는 20와트짜리 전구 하나 분량의 전기로 움직인다. 알파고는 그 수만 배의 전기를 쓰면서 바둑 하나를 겨우 이겼다.
이긴 것은 맞다. 그런데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인간은 직관으로 수를 읽었고, 알파고는 엄청난 전기를 쏟아부어 모든 경우의 수를 탐색했다. 알고리즘이 똑똑해진 것이 아니라, 전기를 더 많이 쓴 것이다.
이 방식으로는 로봇 몸통 안에 들어갈 두뇌를 만들 수 없다.
수도관과 양동이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양동이 배달이다. 배달부가 물을 담아서 집집마다 가져다준다. 처음엔 이 방식으로 충분했다. 인구가 적었고, 필요한 물도 많지 않았다.
도시가 커졌다. 배달부를 더 많이 고용했다. 양동이를 더 크게 만들었다. 더 빠른 사람을 뽑았다. 그래도 따라가기 힘들어졌다. 결국 어느 시점이 됐을 때, 배달 방식을 개선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왔다.
수도관을 깔았다. 배달부가 필요 없어졌다. 물이 관을 타고 스스로 흘렀다. 적은 에너지로 훨씬 많은 물을 공급했다.
배달부가 나빠서 바꾼 게 아니다. 양동이가 나빠서 바꾼 게 아니다. 도시의 규모가 양동이 배달 방식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방식 자체를 바꿔야 했다.
지금 AI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딱 이 도시 규모가 됐다. 양동이를 개선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계산기를 아무리 빠르게 해도
계산기가 있다.
처음엔 덧셈 뺄셈을 했다. 훌륭했다. 주판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곱셈 나눗셈도 됐다. 더 복잡한 계산도 됐다. 계산기는 점점 빨라졌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들어왔다. "이 그림 속 인물이 행복해 보이는가, 슬퍼 보이는가?"
계산기로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가. 아무리 빠른 계산기라도 안 된다. 빠르기의 문제가 아니다. 계산기는 숫자를 다루는 도구인데, 이 질문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구 자체가 이 질문에 맞지 않는다.
지금 AI가 직면한 한계 중 하나가 이것이다. 지금의 컴퓨팅 방식이 너무 잘 설계된 '계산기'여서, 계산기로 풀 수 없는 문제 앞에서는 아무리 빠르게 해도 안 된다.
자동차 경주와 도로의 문제
F1 경주차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다. 시속 300킬로미터를 넘긴다. 이 차를 몰고 오프로드 산악 지형을 달리라고 했다. 흙길, 돌길, 가파른 언덕, 좁은 골목.
경주차는 얼마 못 가서 멈춘다. 차가 나빠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평평한 트랙에 최적화된 차여서 그렇다. 포장된 직선 도로를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도록 모든 것이 설계됐는데, 요구하는 지형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산악 지형에는 사륜구동 오프로드 차가 필요하다. F1 경주차를 개선해서 산을 넘게 만들 수 없다. 설계 철학 자체가 다른 차가 필요하다.
지금의 AI는 F1 경주차다. 정해진 조건에서, 충분한 전기를 공급받으며, 데이터센터라는 반듯한 트랙 위에서는 누구보다 빠르다. 그런데 공장 현장, 병원 복도, 할머니 거실이라는 오프로드를 달려야 하는 순간, 설계 자체가 맞지 않는다.
세 개의 문제가 동시에 막혀있다
지금 AI의 구조적 한계는 사실 세 개의 벽이 동시에 막혀있는 것이다.
첫 번째 벽은 전기다.
챗GPT 한 번 쓸 때마다 드는 전기가 구글 검색의 수십 배다. 대형 AI 모델 하나를 학습시키는 데 드는 전기가 작은 도시 하나가 한 달 동안 쓰는 양이다. 이 방식으로는 로봇 배터리 하나로 하루를 버틸 수 없다.
두 번째 벽은 열이다.
전기를 많이 쓰면 열이 난다. 지금 데이터센터의 절반은 컴퓨터가 아니라 냉각 장치다. 컴퓨터 옆에 에어컨을 달아놓는 것이다. 이것을 사람 크기 몸통 안에 넣으면 오분 만에 녹아버린다.
세 번째 벽은 속도다.
빠른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순서대로 처리한다.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동시에 수백 가지를 처리해야 하는 실시간 판단에는 이 방식이 맞지 않는다.
세 개의 벽이 동시에 막혀있다. 알고리즘을 개선하면 세 번째 벽이 조금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벽은 알고리즘으로 건드릴 수 없다. 전기를 얼마나 쓰는지는 컴퓨팅 방식이 결정하지, 알고리즘이 결정하지 않는다.
선풍기와 에어컨
여름에 더위를 식히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선풍기를 더 크게 만들거나, 더 빠르게 돌리는 것. 아니면 에어컨이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쓰는 것.
선풍기는 공기를 움직인다. 바람이 피부의 열을 날린다. 원리 자체가 공기를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빠르게 돌려도 실내 온도를 낮출 수 없다. 공기를 움직이는 방식의 구조적 한계다.
에어컨은 아예 다른 원리다. 냉매가 열을 흡수해서 밖으로 내보낸다. 공기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열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선풍기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지금 AI를 개선하는 것은 선풍기를 더 빠르게 돌리는 것이다. 분명히 효과가 있다. 더 시원하다. 하지만 방 안의 온도를 20도로 만들 수는 없다. 그건 에어컨이 해야 할 일이다.
퀀텀 컴퓨팅이 에어컨이다. 원리 자체가 다른 방식이기 때문에, 지금의 AI가 구조적으로 넘지 못하는 벽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망치와 나사못
목수가 있다.
망치 하나로 평생 일했다. 못을 박고, 뜯어내고, 다듬었다. 망치 실력이 동네에서 제일이다.
어느 날 나사못이 필요한 작업이 생겼다. 망치로 나사못을 박으려 한다. 안 된다. 망치를 더 크게 만들었다. 여전히 안 된다. 더 강하게 내리쳤다. 나사못이 구부러졌다.
드라이버가 필요하다. 망치가 나빠서가 아니다. 망치질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나사못은 망치로 박는 도구가 아니다.
지금 AI가 마주친 문제 중 일부가 나사못이다. 망치를 더 크게 만들고, 더 세게 내리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드라이버가 필요하다.
그 드라이버가 퀀텀이다.
그러면 지금 AI는 끝인가
아니다. 전혀 아니다.
선풍기가 쓸모없는 게 아니다. 에어컨이 있어도 선풍기는 쓴다. 망치가 쓸모없는 게 아니다. 드라이버가 있어도 망치는 쓴다. 자전거가 쓸모없는 게 아니다. 기차가 있어도 자전거는 탄다.
지금의 AI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쓰일 것이다. 다만 AI가 닿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구조적으로 맞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그 영역을 위해 다른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전거가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동안, 기차는 산을 뚫고 간다.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세상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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