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 진동, 전류가 뒤섞인 세계를 선 하나로 나눌 수 없는 이유
베테랑 공장 반장 이야기
경력 30년의 공장 반장이 있다.
이 사람은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뭔가 이상한지 안다. 설명하기 어렵다. 기계 소리가 평소랑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공기가 좀 더 뜨거운 것 같기도 하고, 바닥을 타고 오는 진동이 묘하게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어느 하나가 결정적으로 이상한 게 아니다.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 반장은 말한다. "3번 기계, 오늘 오후에 한번 봐야 할 것 같아."
저녁에 실제로 3번 기계에서 이상이 발견된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면 반장은 대답한다. "그냥 느낌이야. 오래 하다 보면 알아."
그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 컴퓨터에게 가르치는 것. 그것이 산업 AI가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다.
사람 몸의 비유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진찰한다.
체온이 38.5도다. 열이 있다. 그런데 의사는 체온만 보고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 맥박도 본다. 혈압도 본다. 얼굴색도 본다. 목을 눌러보고, 배를 눌러본다. 숨소리를 듣는다.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다. 언제부터냐고 묻는다.
체온 38.5도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맥박이 빠르면서 체온이 높으면 어떤 병이고, 맥박은 정상인데 체온이 높으면 다른 병이고, 거기에 혈압까지 낮으면 또 다른 상황이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얽혀서 하나의 진단을 만든다.
공장 기계도 사람 몸과 같다. 온도 하나만 보면 아무것도 모른다. 진동 하나만 봐도 마찬가지다. 전류 하나만 봐도 그렇다. 이 세 가지가 서로 어떻게 얽혀서 움직이는지를 동시에 봐야, 기계의 '건강 상태'가 보인다.
운동장에서 선 긋기
초등학교 운동장을 상상해보자.
선생님이 말한다. "몸이 아픈 아이는 왼쪽, 건강한 아이는 오른쪽으로 가세요."
아이들이 움직인다. 선생님이 분필로 운동장 한가운데 선을 긋는다. 왼쪽엔 아픈 아이들, 오른쪽엔 건강한 아이들. 깔끔하게 나뉜다.
이번엔 문제를 바꿔보자. "오늘 오후에 아플 것 같은 아이는 왼쪽, 괜찮을 것 같은 아이는 오른쪽으로 가세요."
아이들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아침에 밥을 조금 먹었지만 어제 잠을 잘 잤고, 요즘 날씨가 추워서 코가 약간 간질거리고, 어제 체육 시간에 무리하게 뛰었고, 원래 환절기에 약한 편이고, 오늘 점심 메뉴가 차가운 음식이라는데…
어느 쪽에 서야 할지 모른다. 선생님도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지 모른다. 아무리 정교하게 선을 그어도, 반드시 틀리는 아이가 생긴다.
공장 기계의 이상 감지가 딱 이 문제다.
세 명의 용의자
형사 드라마를 한 편 상상해보자.
사건이 일어났다. 용의자가 세 명이다. 형사가 한 명씩 심문한다.
첫 번째 용의자는 알리바이가 없다. 수상하다. 두 번째 용의자는 동기가 있다. 수상하다. 세 번째 용의자는 거짓말을 했다. 수상하다.
그런데 알리바이가 없는 것만으로 범인이라고 할 수 없다. 동기가 있는 것만으로도 안 된다. 거짓말을 한 것만으로도 안 된다. 베테랑 형사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고려한다. 알리바이가 없으면서, 동기도 있고, 거짓말도 했다면 그때 비로소 강한 용의자가 된다.
공장 기계도 마찬가지다.
온도가 높은 것만으로는 이상이 아니다. 여름엔 원래 올라간다. 진동이 센 것만으로도 이상이 아니다. 풀가동 중엔 원래 그렇다. 전류가 튀는 것만으로도 이상이 아니다. 시동 걸 때마다 그런다.
그런데 온도가 평소보다 높으면서, 동시에 진동 패턴이 불규칙해지고, 거기에 전류가 미세하게 요동치기 시작하면. 그때가 "3번 기계 오늘 오후에 봐야 한다"는 신호다.
세 가지가 얽힌 그 조합을 읽어내는 것. 선 하나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다.
선 하나의 한계
클래식 AI가 이 문제를 푸는 방식을 보자.
운동장에서 빨간 점과 파란 점을 나눠야 한다. 빨간 점은 고장 직전 기계, 파란 점은 정상 기계. AI는 이 점들을 나누는 선을 찾는다.
온도만 놓고 보면 선을 그을 수 있다. "80도 이상이면 빨간 점 쪽." 꽤 잘 맞는다.
진동만 놓고 봐도 선을 그을 수 있다. "진동이 0.8 이상이면 빨간 점 쪽." 이것도 꽤 맞는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상한 일이 생긴다. 온도가 75도인데 진동이 0.9면 어느 쪽인가. 온도 기준으로는 파란 점인데, 진동 기준으로는 빨간 점이다. 기준이 충돌한다.
여기에 전류까지 추가되면 충돌이 세 방향에서 일어난다. 온도는 정상인데 진동이 높고 전류는 낮거나. 온도는 높은데 진동은 정상이고 전류가 불안정하거나. 조합이 수십 가지가 된다.
어디에 선을 그어도 반드시 틀리는 점이 생긴다. 선이 구불구불해진다. 더 구불구불해진다. 결국 선이 너무 복잡해져서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왔을 때 어느 쪽인지 판단을 못 한다.
운동장 바닥에서 아무리 정교하게 선을 그어도, 이 문제는 선으로 풀리지 않는다.
날씨와 기분의 관계
일상적인 예를 들어보자.
"비가 오면 기분이 우울하다."
이 문장이 맞는가. 어떤 사람에게는 맞다. 어떤 사람에게는 오히려 비가 오면 기분이 좋다. 빗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같은 사람도 날에 따라 다르다. 피곤한 날 비가 오면 더 우울하지만, 좋은 일이 있었던 날 비가 오면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날씨와 기분 사이에는 단순한 선이 없다. 날씨, 피로도, 그날의 사건, 계절, 함께 있는 사람, 창문 밖 풍경까지 수십 가지가 동시에 얽혀서 기분을 만든다.
"비가 오면 기분이 어떻다"는 선 하나로 이 복잡한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공장 기계도 감정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온도가 오르면 고장난다는 선 하나로는, 기계의 '상태'를 표현할 수 없다. 기계는 수십 가지 요인이 얽혀서 지금 이 순간의 상태를 만들어낸다.
실제 공장에서 일어나는 일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가져오자.
어느 자동차 부품 공장에 프레스 기계가 있다. 이 기계가 갑자기 멈추면 라인 전체가 서고, 하루에 수억 원 손실이 난다. 그래서 AI로 고장을 미리 예측하려 한다.
센서를 달았다. 온도 센서, 진동 센서, 전류 센서. 데이터가 쏟아진다.
AI에게 학습을 시켰다. 과거에 고장났던 날의 데이터를 줬다. AI가 패턴을 찾았다. "고장 전날 온도가 올라갔다." 이것을 기준으로 선을 그었다. "온도가 85도 넘으면 경고."
며칠 뒤 경고가 울렸다. 기술자가 달려갔다. 기계는 멀쩡했다. 여름이라 날씨가 더워서 온도가 올라간 것뿐이었다. 오보였다.
반대 상황도 생겼다. 온도는 정상인데 기계가 갑자기 멈췄다. 알고 보니 진동 패턴이 조금씩 바뀌면서 전류도 같이 불안정해지고 있었는데, AI는 온도만 보고 있어서 놓쳤다.
선 하나의 한계가 수억 원짜리 손실로 나타난 것이다.
베테랑 반장은 세 가지를 동시에 느꼈다. AI는 하나씩 선으로 나눴다. 차이는 거기에 있었다.
실타래를 평면에서 풀 수 없는 이유
마지막 비유를 하나 들자.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가 있다. 이것을 책상 위에 평평하게 펼쳐놓고 풀려고 한다. 어디서부터 잡아당겨야 할지 모른다. 이쪽을 당기면 저쪽이 더 엉키고, 저쪽을 당기면 이쪽이 엉킨다.
그런데 이 실타래를 손으로 들어올려 공중에서 바라보는 순간, 어떻게 꼬여있는지 보인다. 어느 실이 어느 실 위에 있는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가 보인다.
평면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차원이 하나 올라가자 보인다.
온도, 진동, 전류가 뒤섞인 공장 데이터가 이 실타래다. 평면에서 선 하나로 나누려는 시도가 책상 위에서 풀려는 것이다. 아무리 선을 정교하게 그어도, 실타래는 더 엉킬 뿐이다.
풀려면 들어올려야 한다. 다른 차원으로 가져가야 한다.
그 '들어올리는 방법'이 다음 편에서 이야기할 퀀텀의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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