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 | 준비된 자의 몫
퀀텀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
1903년 12월 17일.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호크 해변. 오빌 라이트가 조종간을 잡았다. 엔진이 돌아갔다.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올랐다.
12초 동안 날았다. 거리로는 36미터. 초등학교 교실 두 개 길이밖에 안 됐다. 높이는 3미터를 넘지 못했다.
구경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고작 그게 다야? 새도 그것보다 훨씬 멀리 날잖아." 신문들은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구경거리 정도로 여겼다.
그로부터 66년 뒤, 인간이 달 위를 걸었다.
12초짜리 비행과 달 착륙 사이에 얼마나 많은 것이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엔진이 바뀌었다. 재료가 바뀌었다. 설계가 바뀌었다. 하나씩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며 나아갔다.
지금 퀀텀이 딱 그 12초짜리 비행을 막 마친 시점이다.
5분과 10의 25제곱 년
2024년 말, 구글이 발표를 했다.
윌로우(Willow)라는 칩이다. 105개의 큐비트로 만들어진 손바닥만한 칩. 이 칩이 어떤 계산을 수행했다.
이 계산을 지구상의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로 하면 10의 25제곱 년이 걸린다. 윌로우 칩은 5분 만에 끝냈다. SpinQ
10의 25제곱 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상상해보자.
우주의 나이가 약 138억 년이다. 10의 10제곱 정도다. 슈퍼컴퓨터가 필요한 시간은 우주의 나이를 10의 15제곱 배 더 곱한 것이다. 우주가 그만큼 더 나이를 먹어도 끝나지 않는 계산이다.
퀀텀은 그것을 5분에 했다.
구경꾼들이 "고작 12초?" 하고 비웃었던 라이트 형제의 비행처럼, 지금 이 발표를 "그래서 뭘 쓸 수 있는데?"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아직 일상에서 쓸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그런데 라이트 형제가 12초를 날았을 때, 그것을 주목한 몇 사람이 있었다. 그들이 항공 산업을 만들었다.
씨앗이 땅속에서 하는 일
봄에 씨앗을 심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땅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두 주가 지났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구경하던 사람이 말한다. "심었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잖아. 실패한 거 아니야?"
그런데 땅속에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씨앗이 갈라졌다. 뿌리가 뻗기 시작했다. 줄기가 천천히 위를 향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세 주째 되는 날 아침, 땅 위로 새싹이 올라왔다.
퀀텀이 지금 땅속에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들이 수조 원을 쏟아붓고 있다.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매일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새싹이 올라올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
추상적인 이야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자.
2025년 노벨 물리학상이 초전도 양자 회로 연구에 돌아갔다. 1980년대에 이루어진 연구인데, 지금 이 상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 연구가 오늘날 퀀텀 컴퓨터의 핵심 기반이 되었다는 뜻이다. Network World
노벨상은 미래 기술에 주지 않는다. 이미 실재하고 중요성이 입증된 것에 준다.
IBM은 2025년 11월, 새로운 퀀텀 프로세서 나이트호크를 발표했다. 그리고 2026년 말까지 퀀텀 어드밴티지, 즉 클래식 컴퓨터로는 풀 수 없는 실제 문제를 퀀텀으로 먼저 푸는 것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공개했다. IBM
구글은 제약회사 베링거인겔하임과 협력해 퀀텀으로 약물 대사에 관여하는 핵심 효소를 시뮬레이션했다. 기존 방법보다 더 효율적이고 정밀하게. SpinQ
JP모건체이스는 IBM과 파트너십을 맺고 퀀텀 알고리즘으로 금융 옵션 가격 산정과 리스크 분석을 탐색하고 있다. SpinQ
돈이 움직이는 곳에는 이유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돈 계산을 잘하는 금융회사들이 퀀텀에 베팅하고 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어느 날
봄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어느 날 갑자기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천천히 온도가 오른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면 동네 나무에 꽃이 피어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맨가지였는데. 봄이 왔다.
퀀텀 기술이 지금 그 경계선 어딘가에 있다.
2025년은 퀀텀 에러 수정 분야에서 쏟아지는 발표들로 가득했다. 한 전문가는 "우리는 이제 명확하게 탈출 속도의 시대에 있다"고 말했다. 퀀텀 컴퓨터를 크고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 더 이상 물리학의 문제가 아니라 공학의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Network World
물리학의 문제와 공학의 문제는 다르다.
물리학의 문제는 원리 자체가 성립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될지 안 될지 모른다. 공학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고 있고, 이제 실제로 만드는 것이다. 항공기로 비유하면 날 수 있다는 것은 증명됐고, 이제 더 멀리 더 많이 나를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단계다.
꽃이 피기 직전의 나무다.
현실적인 타임라인
그렇다면 언제 실제로 쓸 수 있게 되는가.
솔직하게 말하자. 정확한 날짜는 아무도 모른다.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을 한 날, 누가 정확히 몇 년 후에 달 착륙이 있을지 알았겠는가.
그러나 큰 그림은 보인다.
지금 현재, 2025년에서 2026년 사이. 특정 과학 계산에서 클래식 컴퓨터보다 퀀텀이 더 나은 결과를 내는 사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좁은 영역이다. 화학 시뮬레이션, 특정 최적화 문제. 일상에서 직접 체감하기는 어렵다.
2029년에는 IBM이 스탈링이라는 시스템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개의 논리 큐비트를 가진 완전한 오류 수정 퀀텀 컴퓨터다. 1억 개의 오류 수정 연산을 실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IBM
2029년에서 2030년 사이. 신약 개발, 금융 최적화, 특수 산업 분야에서 퀀텀이 실제 비즈니스 가치를 내기 시작한다. 아직 일반 소비자가 직접 쓰는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이 기술이 만드는 신약이 병원에 오고, 이 기술이 최적화한 공급망이 물류 비용을 낮춘다.
2033년 이후. 더 광범위한 산업에서 퀀텀이 표준 도구가 되기 시작한다.
이것이 지금 가장 신뢰할 만한 전문가들의 대략적인 그림이다.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더 빠를 수도 있고 더 느릴 수도 있다. 그런데 방향은 분명하다.
전기가 들어오던 날 밤
1879년,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다.
처음 전기가 도시에 들어오던 날 밤을 상상해보자. 뉴욕 거리에 전구가 켜졌다. 가스등과 함께. 처음엔 실험적이었다. 비쌌다. 모든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나자 전기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게 됐다.
그 5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발전소가 생겼다. 전력망이 깔렸다. 가전제품이 발명됐다. 냉장고, 세탁기, 라디오. 전기 자체가 아니라 전기를 활용하는 것들이 세상을 바꿨다.
퀀텀의 여정도 이것과 비슷할 것이다. 퀀텀 컴퓨터 자체보다, 퀀텀을 활용해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퀀텀으로 개발된 신약, 퀀텀으로 설계된 안드로이드의 두뇌, 퀀텀으로 최적화된 에너지 시스템.
그 여정의 시작점이 지금이다.
아직 새벽인 것의 의미
새벽 다섯 시다.
날이 밝지 않았다. 아직 어둡다. 밖을 내다보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런데 이 새벽 다섯 시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경쟁이 없다. 아직 아무도 달리고 있지 않다. 지금 일어나서 준비하는 사람과, 해가 중천에 뜬 다음에 일어나는 사람의 차이가 여기서 생긴다.
퀀텀이 지금 새벽 다섯 시다.
퀀텀 컴퓨팅 시장은 2025년 현재 약 18억 달러에서 35억 달러 규모다. 2030년까지 최대 20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SpinQ
지금 이 시장의 크기가 크지 않다. 아직 작다. 그래서 지금이 기회다. 시장이 200억 달러가 됐을 때 들어가는 것과, 지금 들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강이 바다로 가는 길에 합류하는 것과 같다. 강이 작을 때 뛰어들면 함께 바다까지 간다. 바다에 이미 도착한 다음에 뛰어들면 그냥 바닷물이다.
2016년 그날 밤을 기억하는가
2016년 3월,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
그 날 밤, 엔비디아 주식을 산 사람들이 있었다. GPU가 AI의 심장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 순간 알아챈 사람들. 비웃음을 받았다. "무슨 게임 그래픽 카드 회사가 AI랑 무슨 상관이야."
9년이 지났다. 그 사람들이 손에 쥔 것이 무엇인지는 지금 엔비디아 시가총액을 보면 안다.
퀀텀의 알파고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그 결정적인 순간이 아직은 없다. 그 말은 달리 하면, 그 순간이 오기 전에 준비할 시간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알파고 이후에 AI를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들도 많다. 그것도 늦지 않았다. 그런데 알파고 이전에 GPU를 주목했던 사람들은 달랐다.
준비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여기서 분명하게 말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준비한다는 것이 지금 당장 퀀텀 물리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양자역학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퀀텀 컴퓨터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모든 사람이 엔진 설계를 배울 필요가 없었다. 자동차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 먼저였다.
퀀텀도 마찬가지다.
퀀텀이 무엇인지 아는 것. 퀀텀이 어떤 문제를 풀 수 있는지 아는 것.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퀀텀이 어떻게 쓰일지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그 방향으로 조금씩 관심을 두는 것.
이 연재를 여기까지 읽어온 것이 이미 그 시작이다.
마지막 이야기
파도가 오고 있다.
아직 수평선 너머에 있다. 해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이 모른다.
그런데 저 멀리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서핑보드를 들고 바다로 걸어가고 있다. 아직 파도가 닿지 않은 바다로.
80년대에 PC를 처음 배우던 사람들. 90년대에 인터넷 사업을 시작하던 사람들. 2010년대에 스마트폰 앱을 만들기 시작하던 사람들. 그들이 해변에서 어떤 소리를 들었는지 안다.
"그게 뭐가 돼? 아직 멀었잖아. 쓸 수도 없는 걸 왜 배워?"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바다로 걸어갔다. 파도가 오면 올라탔다. 그리고 저 멀리 사라졌다.
황금 동아줄은 항상 이렇게 내려왔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에. 소란한 곳에서 조금 비껴선 자리에. 준비된 사람의 손에 닿을 수 있도록.
그 동아줄이 지금 내려와 있다.
AI가 유틸리티가 되어가는 이 시점에, 퀀텀이 형태를 갖추고 있다. 화면 밖으로 나온 AI가 몸을 갖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 그 두뇌가 될 기술이 태동하고 있다.
준비된 자의 몫이 있다.
그 자리는 지금, 이 순간 준비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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