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퀀텀점프 - 10년마다 세상을 바꾼 것들

친절샘 정이 2026. 5. 1. 11:02

1부 | 왜 지금 퀀텀인가

10년마다 세상을 바꾼 것들


파도를 탄 사람과 구경한 사람

바닷가를 상상해보자.

멀리서 파도가 밀려온다. 처음엔 작은 물결처럼 보인다. 모래사장에 앉아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그냥 바라본다. "저 파도, 별거 아니네." 그런데 몇몇 사람은 슬그머니 일어나 서핑보드를 들고 바다로 걸어간다. 

파도가 해안에 닿는 순간, 구경하던 사람들은 뒤로 물러서고, 보드를 들고 들어간 사람들은 파도 위에 올라타 저 멀리 사라진다.

기술의 역사가 정확히 이 모습이었다.


첫 번째 파도 — 1980년대, PC

1977년, 애플이 처음 개인용 컴퓨터를 내놓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게 뭐에 쓸모가 있어? 회사 전산실에 있는 큰 컴퓨터도 있는데."

실제로 당시 IBM의 한 임원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전 세계 개인용 컴퓨터 수요는 다섯 대면 충분하다." 물론 틀렸다.

1980년대가 끝날 무렵, 컴퓨터는 사무실 책상 위에 올라앉았다. 타자기가 사라졌다. 주판이 사라졌다. 서류 캐비닛이 줄어들었다. 컴퓨터를 먼저 배운 사람은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고, 모른다고 버틴 사람은 조용히 뒤처졌다.

파도는 조용히 왔다가, 세상을 바꾸고 지나갔다.


두 번째 파도 — 1990년대, 인터넷

1995년, 인터넷이 일반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모뎀을 전화선에 꽂으면 끼익— 삐이이이— 하는 소리와 함께 연결이 됐다. 느렸다. 사진 한 장 내려받는 데 몇 분이 걸렸다.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이게 무슨 쓸모야. 그냥 전화하면 되지."

그런데 10년이 지나자 신문사가 흔들렸다. 여행사가 사라졌다. 백과사전을 만들던 회사가 문을 닫았다. 음반 가게가 없어졌다. 인터넷이라는 파도는 정보를 다루는 모든 산업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파도 위에 올라탄 사람들이 있었다. 야후를 만든 사람들, 구글을 만든 사람들, 아마존을 만든 사람들. 그들은 파도가 작은 물결이던 시절부터 보드를 들고 바다에 들어가 있었다.


세 번째 파도 — 2000년대, SNS

2004년, 하버드 기숙사 방에서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들었다.

처음엔 대학생들이 서로 친구 사진을 올리는 사이트였다. 투자자들은 회의적이었다. "사진이나 올리는 게 무슨 사업이야?"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이 터진 직후였으니, 인터넷 사업이라면 고개를 젓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10년 뒤 세상을 보니, 광고 산업이 통째로 인터넷으로 이동해있었다. 정치인들은 SNS로 선거운동을 했다. 연예인이 아니어도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개인이 미디어가 되는 세상.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였다.


네 번째 파도 — 2010년대, 모바일

2007년 1월, 스티브 잡스가 무대 위에서 아이폰을 꺼내들었다.

당시 휴대폰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노키아의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판도 없는 전화기가 팔리겠어?" 노키아는 그로부터 6년 뒤 휴대폰 사업부를 마이크로소프트에 헐값에 팔았다.

스마트폰은 지도를 삼켰다. 카메라를 삼켰다. 은행을 삼켰다. 택시 회사를 삼켰다. 호텔 예약 사이트를 삼켰다. 손바닥 안에 세상이 들어왔다. 2010년대가 끝날 무렵, 스마트폰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있었다.


다섯 번째 파도 — 2020년대, AI

2022년 11월, ChatGPT가 세상에 나왔다.

출시 5일 만에 사용자 100만 명. 두 달 만에 1억 명. 역사상 가장 빠르게 퍼진 서비스였다.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기자가 쓴 기사보다 AI가 쓴 기사가 더 자연스러웠다. 변호사가 작성한 문서보다 AI가 작성한 문서가 더 빠르게 나왔다. 의사가 며칠 걸려 분석한 데이터를 AI가 몇 초 만에 처리했다.

지금 우리는 이 파도 한가운데 있다.


그런데, 파도에는 반드시 이런 순간이 온다

여기서 잠깐 멈추고 바닷가를 다시 떠올려보자.

파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파도 위에 서있는 서퍼가 가장 빛나 보인다. 모두가 환호하고, 모두가 서핑을 배우고 싶어한다. 해변에는 서핑 강습소가 우후죽순 생겨난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환호하는 해변을 등지고, 다음 파도가 어디서 오는지 바라보는 사람.

그 사람이 이미 보드를 들고 바다로 걷고 있을 때, 나머지 사람들은 아직 지금 파도에 환호하고 있다.

지금 AI가 딱 그 순간이다.


AI는 수도꼭지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수도꼭지의 원리를 모른다. 정수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물이 어떤 파이프를 거쳐 집까지 오는지 모른다. 그냥 틀면 나온다. 그리고 그것을 기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당연한 것이다.

AI가 그렇게 되고 있다. 스마트폰 앱에 AI가 들어있다. 검색에 AI가 들어있다. 이메일 자동완성에 AI가 들어있다. 곧 냉장고에도, 자동차에도, 신호등에도 들어갈 것이다.

수도꼭지를 트는 것이 기술이 아닌 것처럼, AI를 쓰는 것 자체가 더 이상 경쟁력이 되지 않는 시대가 오고 있다.

파도가 해변 전체를 덮어버리면, 그 파도 위에 서있다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수평선에 보이는 것

그렇다면 지금 수평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힌트가 있다. 파도는 항상 예고 없이 오지 않았다. 돌아보면 반드시 신호가 있었다. PC가 오기 전에 반도체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오기 전에 전화선이 전국을 연결했다. 스마트폰이 오기 전에 터치스크린 기술이 조용히 발전하고 있었다.

지금 수평선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것이 있다.

화면 속에만 있던 AI가 몸을 갖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병원에서, 거리에서 두 발로 걷고 두 손으로 일하는 로봇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로봇들에게 진짜 두뇌를 달아주려면, 지금의 컴퓨터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전혀 다른 종류의 컴퓨터가 필요하다.

그 이름이 퀀텀이다.


파도를 구경할 것인가, 올라탈 것인가

1980년대에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은 주변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거 배워서 뭐에 써?" 1990년대에 인터넷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은 "거품이야, 곧 꺼져"라는 말을 들었다. 2010년대에 스마트폰 앱을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작은 화면짜리 게임이 무슨 사업이야"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 모두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위험했고, 실제로 실패한 사람도 많았다. 파도가 온다고 해서 모두가 서퍼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파도가 온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과, 알고 있는 사람 사이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올라타지 못해도 괜찮다. 다만 파도가 오고 있다는 것은 알아야 한다.

지금 그 파도의 이름을 배우는 것, 그것이 이 연재를 시작한 이유다.


다음 편에서는 지금의 AI가 왜 한계에 부딪히는지 이야기한다. 아무리 똑똑한 AI도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 문제 앞에서 퀀텀이 어떻게 다른 답을 내놓는지,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