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화학·바이오 기술
시작하기 전에 — 이런 장면을 상상해보자
자물쇠 가게에 자물쇠가 1억 개 있다.
딱 맞는 열쇠를 찾아야 한다. 하나씩 끼워보면 된다. 그런데 1억 개를 하나씩 시도하면 평생이 걸린다.
신약 개발이 이것과 같다.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만들어야 한다. 암세포에 딱 맞는 분자를 찾아야 한다. 가능한 분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10의 60제곱 개다.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다.
하나씩 시도하면 우주 나이가 지나도 못 찾는다.
양자 컴퓨터가 이 탐색을 혁명적으로 바꾼다.
0부 — 신약 개발이 왜 이렇게 어렵고 비싼가
신약 하나를 만드는 데 평균 얼마나 걸리는지 아는가.
12~15년. 비용은 1조 원이 넘는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가.
단계 1 — 후보 물질 탐색: 수백만 개의 분자 중에서 암세포에 효과 있을 것 같은 것을 고른다. 수년이 걸린다.
단계 2 — 동물 실험: 쥐, 토끼에게 테스트한다. 부작용이 있는가. 또 수년이 걸린다.
단계 3 — 임상 시험: 사람에게 테스트한다. 안전한가. 효과가 있는가. 또 수년이 걸린다.
단계 4 — 허가: 정부 승인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99%는 실패한다. 처음에 찾은 후보 물질 100개 중에 1개만 최종 약이 된다.
왜 이렇게 실패율이 높은가. 분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분자는 양자역학의 법칙을 따른다. 전자들이 구름처럼 퍼져있다. 이 전자들의 움직임을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
일반 컴퓨터로 이 계산을 하면 문제가 있다. 원자가 50개만 넘어도 계산이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우주 슈퍼컴퓨터를 동원해도 수천 년이 걸린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양자 컴퓨터다. 자연이 양자역학으로 작동하니까 양자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면 된다.
1부 — 원하는 약을 설계한다: 조건부 분자 생성
이전에 SMILES를 배웠다. 분자를 텍스트로 표현하는 방법.
아스피린 = CC(=O)Oc1ccccc1C(=O)O
이 문자열을 보면 분자 구조를 알 수 있고, 어떤 성질을 가지는지 예측할 수 있다.
양자 AI가 이것을 뒤집는다. 원하는 성질을 먼저 정하고 거기에 맞는 SMILES를 만들어낸다.
맞춤 주문 비유로 설명하면 이렇다.
일반 옷가게에 간다. 있는 옷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다. 딱 맞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
맞춤 양복점에 간다. 내 치수를 재고 원하는 색과 스타일을 말한다. 나에게 딱 맞는 옷이 만들어진다.
양자 AI가 이 맞춤 양복점이다.
연구자가 주문한다. "독성이 없고 물에 잘 녹고 암세포에 달라붙는 분자를 만들어줘."
양자 트랜스포머가 9가지 물리화학적 조건을 동시에 고려한다.
분자량이 얼마여야 하는가. 기름에 얼마나 녹아야 하는가. 수소 결합을 몇 개 만들어야 하는가. 이 모든 조건을 한꺼번에 양자 상태에 담는다.
그리고 그 조건을 만족하는 새 SMILES를 만들어낸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분자다.
실제로 증명됐다. QM9 데이터셋이라는 134,000개 분자 데이터로 훈련시켰다. 조건에 맞는 새 분자를 생성했다. 구조가 유효하고 조건도 만족시켰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것이다. 이전에 배운 양자 어텐션 덕분에 계산이 훨씬 빠르다. 분자 안의 원자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계산하는 것이 고전보다 지수적으로 빠르다.
2부 — 단백질을 이해한다: 자물쇠의 구조를 파악한다
약이 효과를 내려면 특정 단백질에 달라붙어야 한다.
단백질이 자물쇠고 약이 열쇠다. 딱 맞아야 한다.
그런데 단백질 구조가 엄청나게 복잡하다.
DNA 이중나선 비유로 설명하면 이렇다.
DNA가 실처럼 길게 늘어있다. 그런데 세포 안에서 이것이 복잡하게 접혀있다. 어떻게 접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한다.
단백질도 마찬가지다. 아미노산 수백 개가 실처럼 연결돼있다. 이것이 3차원으로 접힌다. 그 3차원 구조가 자물쇠의 모양이다.
어떻게 접히는지 예측하는 것이 단백질 폴딩 문제다. AI 회사 딥마인드가 AlphaFold로 이것을 해결했다. 엄청난 성과였다.
그런데 한 발 더 나가야 한다. 단백질 구조를 알았다. 이제 이 자물쇠에 딱 맞는 열쇠를 만들어야 한다. 열쇠가 자물쇠에 얼마나 잘 달라붙는지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
이것이 단백질-리간드 결합 에너지 계산이다. 리간드가 열쇠(약 분자)다.
고전 컴퓨터의 한계가 여기서 나온다. 결합 에너지를 정확히 계산하려면 전자들의 양자역학적 움직임을 계산해야 한다. 원자가 많아질수록 계산이 불가능해진다.
Quantinuum이라는 양자 컴퓨팅 회사가 제약 회사 Roche와 함께 이것을 양자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했다. 훨씬 더 정확한 결합 에너지 계산이 가능해졌다.
3부 — 타겟 불가 단백질: 기존에 공략 못 한 적을 공략한다
암 치료에서 큰 문제가 있다.
일부 단백질은 약이 달라붙기 어렵다. 구조가 복잡하고 약이 붙을 만한 자리가 없다. 이런 단백질을 타겟 불가(Undruggable) 단백질이라고 한다.
전체 암 관련 단백질의 85%가 이 범주에 속한다. 기존 방법으로는 이것들을 공략할 수 없었다.
장갑차 비유로 설명하면 이렇다.
일반 총으로는 장갑차를 뚫을 수 없다. 장갑이 너무 두껍다. 특수 대전차 무기가 필요하다.
타겟 불가 단백질이 장갑차다. 기존 약이 일반 총이다. 양자 시뮬레이션이 대전차 무기다.
Rahko라는 회사가 Hyrax라는 하이브리드 양자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만들었다. 이 플랫폼이 타겟 불가 단백질의 구조를 더 정밀하게 분석한다. 기존에 공략하지 못했던 자리를 찾아낸다.
이것이 성공하면 지금까지 치료하지 못했던 암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된다.
4부 — 가상 스크리닝: 수백만 개 열쇠를 컴퓨터로 테스트한다
신약 개발에서 가상 스크리닝이라는 과정이 있다.
실제로 합성해서 실험하기 전에 컴퓨터로 먼저 테스트한다.
도서관 사서 비유로 설명하면 이렇다.
도서관에 책이 100만 권 있다. 특정 주제에 관한 책을 찾아야 한다.
일일이 다 꺼내서 읽어볼 수 없다. 먼저 제목과 목차를 훑는다. 관련 있어 보이는 것 100권을 추린다. 그것만 깊이 읽는다.
가상 스크리닝이 이것이다. 수백만 개 후보 분자 중에서 컴퓨터로 먼저 유망한 것 수백 개를 추린다. 그것만 실제 합성해서 실험한다.
STFC Hartree Centre와 IBM Quantum이 이것에 양자 머신러닝을 적용했다. 고전 방법보다 더 정확하게 유망한 후보를 추려냈다.
데이터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특히 양자가 더 잘했다. 이전에 배운 일반화 능력이다. 적은 데이터로도 패턴을 파악한다.
5부 — 전자 궤도 계산: 분자의 진짜 모습을 본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혁신이다.
분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려면 전자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알아야 한다.
전자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전자 궤도라고 한다. 전자 구름처럼 퍼져있다.
이 전자 궤도를 정확히 계산해야 분자가 다른 분자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다.
문제가 있다. 전자가 50개만 돼도 정확한 계산이 불가능하다. 가능한 상태의 경우의 수가 2의 50제곱이다. 약 1000조. 고전 컴퓨터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근사 계산을 해왔다. 정확한 계산 대신 대략적인 계산.
이것이 신약 개발 실패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다. 컴퓨터 계산이 부정확했다. 실제 실험하면 예측과 달랐다.
Riverlane과 Astex라는 회사들이 이것을 해결했다.
양자 오류 수정 기술을 결합해서 50개 전자 궤도를 정확히 계산했다. 기존에 이 계산을 하려면 1000년이 걸렸다. 며칠로 줄어들었다.
밤하늘 별 관측 비유로 설명하면 이렇다.
흐린 날 망원경으로 별을 본다. 구름 때문에 흐릿하다. 별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양자 오류 수정이 구름을 걷어내는 것이다. 별의 정확한 위치를 볼 수 있다. 분자의 전자 궤도를 정확히 볼 수 있다.
이것이 신약 개발의 게임 체인저다. 컴퓨터 계산이 정확해지면 실험 실패율이 낮아진다. 12~15년 걸리던 신약 개발이 훨씬 빨라진다.
6부 — 실제 기업들이 뭘 하고 있는가
이것이 이론이 아닌 현실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있다.
Kuano라는 회사가 대장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대장암을 전이시키는 노툼이라는 효소가 있다. 이 효소를 막는 약을 만들어야 한다.
양자 컴퓨팅으로 노툼 효소의 구조를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했다. 이 효소에 딱 맞는 억제제를 설계했다. 이미 생체 내 실험 단계에 들어갔다. 쥐 실험에서 효과가 확인됐다.
Quantinuum이라는 회사가 Amgen과 함께 면역 치료제를 연구한다. 암 환자의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치료법이다. 면역 반응의 핵심인 단백질 구조를 양자 컴퓨터로 분석한다.
영국 정부가 QuPharma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제약 산업 전용 양자 컴퓨팅 플랫폼을 만든다. 신약 개발 속도를 10배 이상 빠르게 하는 것이 목표다.
전체를 한 번에 보자
새로운 항암제를 개발하는 과정을 양자 기술로 따라가보자.
1단계 — 표적 단백질 분석: 암세포를 키우는 단백질이 있다. 양자 컴퓨터로 이 단백질의 전자 궤도를 정확히 계산한다. 3D 구조를 완벽하게 파악한다.
2단계 — 후보 분자 생성: 양자 트랜스포머에 조건을 넣는다. "이 단백질에 달라붙고, 독성이 없고, 물에 잘 녹는 분자를 만들어줘." 양자 AI가 수천 개의 후보 분자 SMILES를 생성한다.
3단계 — 가상 스크리닝: 양자 머신러닝이 수천 개 후보 중에서 유망한 10개를 추린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결합력과 부작용을 예측한다.
4단계 — 실험실 합성: 최종 후보 10개를 실제로 합성한다. 실험한다. 양자 계산이 정확했기 때문에 예측과 실험 결과가 일치한다.
5단계 — 임상 시험: 동물 실험, 사람 임상 시험으로 진행한다.
결과: 기존 12~15년이 걸리던 신약 개발이 3~5년으로 줄어든다. 비용이 1/10로 줄어든다. 기존에 치료 못 했던 암도 치료할 수 있게 된다.
최종 정리
양자 화학·바이오 기술을 네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다.
첫째, 양자 트랜스포머가 원하는 성질을 입력하면 딱 맞는 새 분자를 설계해낸다. 10의 60제곱 개의 가능성에서 조건에 맞는 것을 양자 중첩으로 동시에 탐색한다.
둘째, 단백질-리간드 결합을 양자 컴퓨터로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한다. 기존에 접근 불가했던 타겟 불가 단백질도 공략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전자 궤도 계산이 1000년에서 며칠로 줄어든다. 분자의 진짜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어서 신약 실패율이 낮아진다.
넷째, 실제 기업들이 대장암, 면역 치료 등에서 이미 생체 실험 단계까지 성과를 내고 있다. 이론이 아닌 현실이다.